〔문민용 칼럼〕 참된 공의와 불의
〔문민용 칼럼〕 참된 공의와 불의
  • 최형순 기자
  • 승인 2024.12.08 10:36
  • 댓글 0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진나라 기해가 나이 많아 수상 자리에서 물러날 때 진왕 도공이 그에게 후임 수상을 천거하도록 했습니다. 그때 기해는 평소 자신의 정적이었던 해호를 추천했습니다. 왕은 깜짝 놀라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어찌 그를 후임 수상으로 추천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문민용 기쁜소식 음성교회 목사
문민용 목사

그 말에 기해는 “왕께서 신에게 물은 것은 이 나라의 수상 될 재목이 누구냐는 것이요, 신의 원수 되는 이가 누구냐를 물은 것이 아니므로 신은 왕께서 물으신 뜻에 합당한 자를 추천한 것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해호 이외의 적임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기해는 “그 사람 다음은 오가 적임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이유는 오는 기해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기 해의 아들 오는 당대 최고의 재상감이었습니다. 왕은 기해의 공평무사에 탄복하고 기해의 조언과 충언을 훗날에도 수용했다고 합니다.

세상사의 성패 여부는 ‘인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평 공정 무사의 원칙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우리 사회는 한결 밝아지게 될 것입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장을 지낸 호레이스 그레이 대법관이 어느 날 거리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무죄 석방을 받아 거리를 활보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범법자를 알아본 그레이 판사는 그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유죄인 것은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소. 당신에게 꼭 일러둘 말이 있소. 후일에 당신은 인간보다 현명하시고 뛰어나신 재판장 앞에 설 것이오. 거기서는 세상의 법률이 아니라 공의대로 심판받을 것이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어둠이 판치지만, 빛이 비치면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공의가 없어지면 죄인이 판치는 세상이 되지만, 공의가 이루어지면 죄인은 설 곳을 잃습니다. 의인은 공의를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공의가 이루어지면 만족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공의를 행하기를 싫어하고, 공의가 이루어지면 두려움 가운데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영국의 웰링턴 제독이 자기의 병사 가운데서 구제 불능인 병사 하나를 사형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려 했지만 너는 그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다시 너를 징계하여 고치려 했지만, 그 징계도 너의 삶을 돌이키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지만 너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너를 사형하는 길이므로 사형을 집행한다.”

이때 그 병사의 친구가 갑자기 뛰어 들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웰링턴 제독님, 하지만 제독님이 저 병사에게 안한 것이 꼭 한 가지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저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친구의 말에 제독은 마음에 감동하여 사형을 취소하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용서한다. 내가 조건 없이 너를 용서한다.”

그 다음부터 이 병사는 완전히 달라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랑스가 영국과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프랑스는 제비를 뽑아 사람들을 군대에 보냈습니다.

한 가지 예외는 뽑힌 사람 대신 누군가 대신 지원해주면 면제받았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뽑혔는데 징집위원 앞에 서서 자기가 2년 전에 이미 사형당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징집관은 소리를 쳤습니다. “당신은 지금 살아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니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2년 전에도 징집당했지만 자기 친구가 대신 군대에 가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사형당했다는 것입니다.

기록조사를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나폴레옹에게 보고하였고 황제는 징집을 면제하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친구가 이미 대신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68년 조용한 사건이지만은 위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계 제2차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이 유대사람 600만을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학살에 원흉이었던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체포되어서 재판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제 사형집행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유대사람 중에 꼴 란즈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히만을 석방해 달라고 대대적으로 데모를 했어요.

대대적으로 석방 운동을 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는 상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아이히만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유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둘째 사형하지 않고 내 버려두어도 인생은 다 죽듯이 저 사람도 곧 죽을 텐데 뭐 미리 죽일 거 없지 않느냐?

셋째는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이미 심판하셨으니 우리가 심판할 것 없지 않느냐? 넷째는 동생을 죽인 가인도 하나님은 용서하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정죄해서 그것이 옳단 말이냐고?

마지막 다섯째가 너무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사랑이 식어지는 세상에 이제부터라고 참으로 사랑을 심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여러분 언제까지 보복할 겁니까?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충청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