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표창 받은 강도묵 ㈜경동기술공사 대표
대통령 표창 받은 강도묵 ㈜경동기술공사 대표
  • 홍세희 기자
  • 승인 2006.11.0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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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경제인, 이후엔 봉사하며 살고파”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을 토대로 전 임직원이 일치단결해 근무하고 싶은 기업, 기술력 우위의 초일류기업으로 힘차게 정진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더 국내 엔지니어링 기술발전에 기여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경동기술공사 강도묵(48) 대표가 지난 10월 18일 오후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개최된 제3회 엔지니어링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강 대표는 이번 시상에서 200여 건의 설계 및 감리용역에 참여해 환경친화적인 설계를 하고, 신기술 적용으로 공사비 절감 등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성공한 기업인으로 본지 커버모델이 되어달라는 제의를 몇년간 수차례 거절해 왔던 강도묵 대표는 회사 업무와 함께 최근에는 경영학 박사 논문 마무리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이번 대통령 표창을 계기로 어렵게 섭외되었다. 토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촬영과 인터뷰는 반나절을 훨씬 넘겨서야 끝이 났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휴대폰 전원도 꺼 놓은채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18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강도묵 대표를 만나 회사의 경영철학 및 비전과 함께 누구보다도 따뜻한 베풂을 나누며 사는 그의 삶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06년도 가장 큰 대형 프로젝트 수주

강도묵 대표가 이끌고 있는 ㈜경동기술공사는 1988년 12월 창립 이래 18년간 토목 분야의 외길로 정진, 사업을 전문화해 인력, 매출실적, 사회공헌도 등 전 분야에 걸쳐 전국에서도 최상위권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엔지니어링 용역회사로 발돋움했다. 특히 환경보전과 자원 재활용을 위한 강도묵 대표의 신기술 개발 노력으로 충남대 등 9개 대학과 산·학·연 협약을 맺었으며 47건의 신기술 및 특허 보유라는 결과도 낳았다. 또한 서해안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동해고속도로, 전주-광양간 고속도로, 춘천-양양간 고속도로 실시설계 등 건설교통부 각 지방청의 도로 사업과 공업단지 개발, 택지 조성 등 전국 1,500여 건의 주요 사업에 참여해 최고의 기술서비스를 제공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사업과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지구 개발사업도 수주했으며, 최근 평택국제화계획지구 조사설계 용역에 주관사로도 선정되었다. 한국토지공사가 시행하는 이 사업은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택지 조성 등을 통해 국제교류 거점을 확보하는 대단위 개발 프로젝트로 지역 업체가 중앙에 진출해 2006년도 가장 큰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경동기술공사는 또 지역 내 동종업계 최초로 KS A/ISO 9001인증서를 획득, 현재 전문기술용역업의 엔지니어링 분야에 도로 및 공항, 도시계획 분야를 포함한 20개 분야 및 총 40개 주요 분야에 등록, 면허를 갖추고 있다. 국가기간산업발전과 지역경제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건실한 종합 엔지니어링 업체로 성장해, 현재 국내 관련업계 2600여개 회사 중 20위권 이내에 속한다.

토목 전공한 형들 덕, 자연스럽게 토목과 인연 강도묵 대표는 공주 정안면 쌍달리에서 11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네명의 형이 토목을 전공한 영향으로 ‘토목’이란 단어에 익숙했던 강 대표는 형들의 권유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학도 토목 계통으로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88년 서구 변동에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이렇게 16명의 식솔들로 구성된 회사를 창립한 것이 ㈜경동기술공사의 시초. 초기엔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전문기술사 55명을 포함해 420명의 직원을 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이지만 성취욕이 강해 한 번 하겠다고 다짐하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강도묵 대표는 1년 365일 중 휴일없이 출근했으며 ‘휴갗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밖에 모르는 리더는 아니었다. 직원들이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먼저 챙겨주려 한다. 바로 앞만 보지 않고 멀리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경동기술공사가 빠른 시간 내에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직원들을 위한 강 대표의 배려 때문은 아닐까. 열심히 일하는 동안 세 번의 사무실 이전이 있었고, 회사 창립 10년 만에 현 위치(서구 월평동)에 사옥을 짓고 정착하게 되었다. 강 대표는 그제서야 첫 휴가를 설악산으로 떠났다. “사옥을 준공할 때까지 한 번도 휴가를 간 적이 없어 아내와 아들, 딸에게 늘 미안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휴일없이 출근하다 휴가를 가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저녁 무렵엔 일손을 놓고 보내니, 휴가지에서의 하룻밤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여기서 잠깐 강도묵 대표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보자. 강 대표는 매일 오전 4시 40분경에 일어나 2개의 일간지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5시쯤에는 헬스장에 가고 7시 뉴스를 보면서 아침을 맞는다. 출근길에는 하루 일과를 미리 생각하며 시간을 조절한다. 업무가 끝나면 자신이 속한 숱한 모임들에 참석한다. 하루 평균 두 건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경동은 이제 전국 2600여개 엔지니어링 업체 가운데 상위권에 속하는 규모로 성장,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토목설계 및 종합감리 전문회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특히 매출 대부분이 용역비인 엔지니어링 회사 특성상 경동의 연간 수주액 600억 원은 상당한 규모. 지방에 본사를 둔 회사 가운데는 가장 큰 액수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온 강도묵 대표의 행적을 돌아보면 회사의 빠른 성장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약으로 가득찬 서랍장의 비밀

어느날인가, 대기업의 한 임원이 강도묵 대표의 방에 찾아 왔다. 대화중에 그가 강 대표에게 묻는다.

“강 사장님, 약이 한 가방쯤 됩니까?” 강 대표는 대답 대신 자신의 서랍 한 칸을 열어 보였다. 서랍 안은 각종 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에피소드 중 한 예를 들어준 강 대표에게 서랍을 열어봐 달라고 했다. 여전히 약이 가득하다. “이 약을 다 드세요?” 놀라 물으니 웃음으로 대신한다. 이는 CEO로써 기업을 운영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

강 대표는 얼마전 자신이 힘들 때 약을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 불교를 믿는 그는  힘들 때마다 유성구 반석동 국방과학연구소 인근에 위치한 ‘구암사’를 찾아가는 것. 평소 다니는 절인데 회사에서 차로 15분 정도 가면 도착하기 때문에 속이 상해 감정억제가 안될 때 이 절을 찾는다. 그리곤 대웅전에 홀로 앉아 부처님과 대화를 나눈다. ‘부처님,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하고 부처님과 무언의 대화를 30분 정도 하고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편안해 진다. 그래서 이제는 속상할 때 뿐 아니라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를 앞두고 있을 때도 부처님을 찾는단다.

시민단체 참여, 평송장학회장 등 베풂의 삶 강 대표가 업무를 마치고 참석하는 모임의 대부분은 ‘친목’ 보다는 ‘후원’ 쪽에 가깝다. 시민운동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참여자치시민연대를 비롯해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YMCA 등 웬만한 사회시민단체에서 회원 또는 그 이상의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각종 모임이나 단체에서 강 대표에게 ‘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지만 앞에 나서기를 원치 않는 그는 늘 정중히 거절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장’을 맡은 것이 있으니 바로 평송장학회 회장직이다. “대부분의 장학회가 기금을 조성해 그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과 달리 평송장학회는 회원들이 매월 내는 회비 1만원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돕습니다. 매달 1만원만 내면 되기 때문에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회원들 중에는 유명인사부터 아파트경비원, 음식배달원, 일용직 근로자까지 다양하지요.”2002년 3월 5일 14명으로 시작한 평송장학회 회원은 이제 700여명으로 늘었다. 장학회는 11월 뜻깊은 달을 맞이하게 되었다. 1만원씩 성금을 모아 2억원을 조성하게 된 것. 진정한 ‘만원의 행복’인 셈이다. 1만원씩의 회비를 내는 만큼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도 없다. 순수성을 지켜가기 위해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에게 임원을 맡기지도 않는다. 이는 강 대표가 장학회장으로써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다.“평송장학회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닌 가장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때로는 외압으로 장학생을 추천받기도 하는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간혹 오해도 받고, 원성도 샀지만 장학회 선발기준에 예외를 두지는 않고 있어요. 제가 장학회장으로써 지키고 있는 강한 선발원칙이지요.”장학회를 통해 한 학생이 받는 장학금은 중·고교생이 100만원씩, 초등학생 60만원으로 1년에 60명씩 4,800만원이 소요된다. 9월말 현재 240명에게 1억 4,260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강 대표는 현재 6천만원 정도가 남아있고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람도 많아 장학금 혜택을 받는 학생들을 점차 늘릴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조성된 장학금은 장학금 이외의 목적으로 절대 사용되지 않기에 가능한 것.“생활이 어렵다보니 이혼한 가정이 많아 할머니와 함께 장학증서를 받으러 오는 학생이 많아요. 그 할머니들이 제 손을 붙잡고 감사하다고 하실 때, 또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보답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강 대표는 1년 동안 지불할 장학금이 예치되어 있고, 회원도 증가하는 추세로 체계가 잡힌 만큼 내년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좀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가 평소에 즐겨하던 말 중에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동전 셋닢(30원)만 가지고 간다’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살면서 나눔에 동참하지 못하고 부를 축적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강 대표는 ‘부를 축적하는 경제인으로 남고싶지 않다, 주위를 많이 바라보며 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소망한다. 이렇게 사는 그이기에 참여자치시민연대가 선정한 아름다운 사람상 첫 수상자이며, 대전·충남 7천여 라이온중 최우수 봉사상을 수상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정계에서 종종 거론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언젠가는 정계와 인연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은데, 이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는 모두가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임들이건만 이로 인한 오해도 하는 것 같다고 답한다.

“정치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능력도 없고요.순수하게 지역의 경제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정치를 하려 했다면 각종 사회단체의 ‘장’을 맡았을 텐데, 저는 오히려 최대한 그런 자리를 피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지금 경제인으로 불리는 것에 만족한다고 강조했다.

   
외로왔던 어린시절 돌아보며 정(情) 나누려

건실한 회사를 이끄는 CEO로써 제법 권위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언제나 겸손한 강도묵 대표는 유난히 정이 많다. 존경받는 경제인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바람 외에 그의 또다른 희망은 초등학교 교장을 하고 싶다는 것.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정치가 아니라 초등학교 교장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좋아해요. 대학 다닐 때 교직을 이수해서 중등교사 자격증도 갖고 있고, 지금 대학에서 강의(강도묵 대표는 현재 배재대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4학기째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의 가슴에 와 닿는 강의를 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자료를 수집해 스크랩하는 등 열의를 보인다)도 하고 있으며 곧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CEO 경력 20여년이면 이 다음에 초빙교장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게 저의 희망 입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는 어린시절을 외롭게 보냈다고 회고한다. 강 대표는 공주에서 8남 3녀중 막내로 태어나 형제가 많았지만 4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전으로 전학오면서 남모를 그의 외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처음에 형과 살다 이 형이 타지역으로 전출가면 다른 형과 살고, 또 형이 군대 가면 또다른 형네로 옮겨 살면서 6명의 형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때문인지 밝게 자라진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잔 정이 많다고 하는데 이런 어린 시절의 영향이 있는 것 같네요.”

강 대표는 성장하면서 봉사와 나눔, 이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는 매 짝수달 둘째주 목요일에 형제모임을 한다. 이 날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강 대표 남매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2년 전 어머니가 작고하셨지만 형제모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설악산, 캄보디아 등 국내외 여행도 유치했다. 강 대표는 11남매 중 막내인지라 이 모임에서 총무역을 맡고 있다.

“토목집안이기도 하지만 매형 3명을 포함해 조카 삼촌 등 가족 대부분이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교육자 집안이기도 합니다. 7형제중 세명이 박사학위를 취득해 대학교수로 재직중에 있고, 4번째로 제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집집마다 경사가 엇갈려 ‘한 턱’씩 내다 보니 어느해인가는 1년 동안 한 번도 회비를 걷지 않은 적이 있어요. 가족모임인 만큼 어느 모임보다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성공한 경제인으로 불리우고 싶지만 50대 중반 이후에는 남을 위해 더 많은 봉사를 하며 지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지닌 강도묵 대표. 그는 인터뷰 말미에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며 한 마디 덧붙였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내며 내조해준 아내(유혜숙)에게 고맙다는 말과 올해 대학에 입학한 딸, 고2 아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홍세희 기자 foru@sisaforu.com
사진협조 / 성사진관 월평점 ☎ 042-477-7811
메이크업 / 이미지매직 김미애 대표 ☎ 042-252-0282

강도묵 대표는 누구?

< 학력>
충남대학교 농공학과 졸업(토목 전공)
배재대학교 국제통상대학원 
국제통상학과 졸업(경영학 석사)
배재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박사과정 재학중(인사관리 전공)

< 사회활동>
대전 교통방송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대전 서구청 건축심의 위원, 투자심사위원회 위원
대전둔산경찰서 피해자지원협의회 회장
대전지방검찰청 범죄예방위원회 운영위원
대전 고등검찰청 항고심사위원회 위원
충남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한밭대학교 대외협력 위원회 위원
대전광역시 개발위원회 부회장
바르게살기운동 대전광역시 협의회 부회장
대한토목학회 대전·충남지회 고문
평송장학회 회장
배재대학교 겸임교수
포유 자문위원

< 상 훈>
대통령 표창(엔지니어링의 날)
국무총리 표창(환경의 날)
행정자치부장관 감사장(경찰의 날)
대전광역시장 표창(지방세 성실납세)
대전광역시장·충남도지사·충북도지사 공로패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추진 공로)
대전광역시 서구청장 표창
아름다운 사람 상(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최우수 봉사상 (국제라이온스협회 355-D지구 년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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