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속에 얽힌 비밀, 베일을 벗다
웃음 속에 얽힌 비밀, 베일을 벗다
  • 이루리 기자
  • 승인 2006.11.10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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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 선정 - <웃음의 미학> 저자 류종영 교수

“최근 대한민국에서 웃음은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웃음 연구소도 있고, 책도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행복을 위해 웃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논의만 많을 뿐, 이론적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군가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집대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발행된 류종영(목원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의 <웃음의 미학>이 최근 대한민국학술원을 통해 ‘2006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류 교수를 찾아가 웃음 이론과 함께하는 근황을 들어보았다.

   
웃음 이론 한데 모은 최초의 책

<웃음의 미학>. 사실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다. 그리스·로마신화 읽듯 재미 삼아 쭉쭉 읽힐 줄 알았는데, 웬걸… 살짝 공부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좀 더 진지한 태도로 읽어 내려갔다. 코믹과 웃음, 유머와 같이 평소 가벼이 여겼던 부분들의 의미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으로 무장해 마음을 당기기 시작했다. 한 챕터를 넘기고 나서부터는 책의 마력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손이 자주 닿는 책장에 꽂아 두고 싶은 책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웃음의 미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20세기까지의 서양의 웃음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웃음 이론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또 중세의 웃음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에 기록된 웃음을 분석했다. 이처럼 서양의 웃음 이론을 주로 설명하지만 우리나라의 민담이나 설화, 고담들을 예로 들어 풀어 나간 것도 매력적인 장점이다. 류종영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를 시작으로 홉스, 스피노자, 데카르트, 칸트, 장 파울, 헤겔, 맑스, 보들레르, 니체, 프로이트, 베르그송, 윙어 등의 학자들이 연구한 웃음 이론들을 유기적으로 정리했다.

“웃음의 생성 동기가 다양하듯 웃음 이론들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웃음 이론들이 생성된 동기들과 사회적 배경들을 밝혔습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으나, 우리나라의 ‘웃음’ 연구를 위한 기초 이론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류종영 교수는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이 책은 웃음 이론을 한데 모은 최초의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몇몇 대학에서는 부교재로 쓰일 만큼 관심 있는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

류 교수 전공은 독일의 현대 희곡, 즉 Drama다. 고전주의의 Drama와는 달리 현대 Drama는 순수 비극이나 희극보다 희비극이 압도적으로 많다. 서양 사람들이 희비극이나 희극에서 ‘희극적’이라고 지적한 부분들 중에서 어떤 부분들은 동양 사람들이 볼 때 희극적이 아닌 것들도 있다. 그래서 류종영 교수는 ‘희극적’이라는 말의 근본적인 의미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게 되었고, 희극적이라는 말과 웃음과의 연관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관심이 책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고생 많았던 만큼 학계의 관심도 상당

하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이미 6~7년 전부터 웃음에 관한 논문을 내놓고 관련 원서도 틈틈이 읽어 왔으나 방대한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고, 이를 집대성 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울러 학술진흥재단의 ‘선도 연구자 지원 사업’ 프로젝트를 통한 것이어서 약속한 시간 안에 쭉쭉 진도가 나가야만 했다.

“대부분의 자료는 독일에 있는 도서관을 통해 수집했고, 최근 자료는 새 책으로 구입해서 보았습니다. 책을 쓰는 2년 반 동안 독일에 두 번 들렀고, 현지에서 공부하는 제자를 통해 계속해서 자료를 전달 받았습니다.”

독일은 유럽 문화의 마지막 거점, 종점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독일에 도착한 문화들은 이론화되고 체계화될 수 있었다. 류종영 교수가 독일에 주목한 이유다. 하지만 독일어가 가깝고 자신있다 해도 고어가 등장하는 철학, 심리학 서적들을 모조리 읽고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면 많은 정성을 들여야 했다. 마이크로필름으로 찍어 놓은 고문서를 복사해 필요한 자료인지를 검토했고, 700페이지가 넘는 원서를 몇 번씩 읽고도 책에는 한 문단 인용하면 그만이었다. 오역은 정말 피해야 했다. 어디 독일어뿐인가. 영어와 불어, 라틴어로 된 자료들을 읽고 핵심을 잡아내야 했다. 지금 돌이켜 봐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은 과정이었다. 이 시간들을 거치면서 동료 교수들의 도움을 넘치게 받았다.

류 교수는 최근 6개월 간 중국에 다녀온 이후 벌써 40여권의 책을 읽으며 예문을 뽑아내고 있다. 게다가 ‘대학 교재로 쓰고 싶다’, ‘조금 더 쉽게 풀어 줄 수 없냐’는 지속적인 요청에 못 이겨 ‘코믹, 유머, 위트’를 중심으로 좀 더 편안한 글을 만들고 있다. 대학에서 직접 교양과목 강의를 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류 교수는 풍자, 패러디, 캐리커처, 트라베스티, 그로테스크 등과 같은 하위 개념들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고 귀띔해 주었다. 넘쳐 나는 책들과 자료들로 그득한 연구실을 나오면서, 그의 다음 목표를 기대할 수 있었다. 

/ 이루리 기자 pinyroo@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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