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30년 무사고 우유배달 이모!”
“나는야, 30년 무사고 우유배달 이모!”
  • 이루리 기자
  • 승인 2006.09.07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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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생 - 대전지역 장수 우유 배달부 김임호 씨

“30년 동안 빙판길 빗길 가리지 않고, 자전거를 타며 우유를 배달했습니다.”  웃는 얼굴이 참 건강하고 화사하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 속에 소녀 적 얼굴이 남아 있는 김임호(61·태평동)씨. 그 건강함의 원동력은 낙천적인 성격과 30년째 이어오고 있는 우유 배달 덕이라고 한다. 

   
김임호씨는 결혼한 지 8년째 되던 76년부터 지금까지 우유 배달을 하고 있다. 한 가지 직업을 30년 동안 유지하는 것도 칭송 받을 만 하지만, 흔히들 고된 일로 분류하는 우유 배달을 해태유업에서만 30년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이 앞선다. 넉넉한 집안에서 귀염 받는 딸로 자라 조치원 여고를 졸업하고 성당에서 총무 일을 맡던 시절, 월남에 있던 남편과 펜팔로 인연을 맺었다. 

“결혼하면 장바구니 들고 시장 보고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31살이 된 76년, 딸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킨 그 해에 이발소를 하는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생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보따리장수라도 해볼까 싶은 심정에 신문을 뒤적이다 우유와 요구르트 배달 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발견했던 것이지요.”

그 때부터 김임호씨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다.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대리점에서 우유를 받아 대흥동 일대의 가정집과 사무실, 구멍가게 등을 돌기 시작했다. 김임호씨! 김임호씨! 하던 동료들의 부름은 어느덧 ‘이모’로 변했고, ‘우유 배달 이모’로 자리 잡게 되었다. 김임호씨 본인도 배달을 하다가 어디서 ‘이모!’ 하는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고개를 돌릴 만큼 익숙해졌다.  

“전성기 때는 하루에 우유 400개, 요구르트 700개를 배달하기도 했다”는 김임호씨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몸이 아파 빼먹은 날은 한번도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우유 배달은 배달해 먹는 사람보다 배달부가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것만큼 속 모르는 소리도 없다.

남들보다 두세 시간 먼저 일어나 순수하게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몇 백 개에 달하는 우유를 자전거 뒤 수레에 실어 운반해야 하고, 배달하는 사이 수레 째 도둑맞기도 했다. 한두 개 집어 가는 건 일축에도 안 낀다. 월급을 봉투째 잃어버린 날도 있었다. 판매량에 밀려 구역을 잘렸을 때는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딸의 피아노 레슨비를 봉투에 넣어 전해 줄 때는 세상 여느 엄마 못지않게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이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속 한번 안 썩이고 자란 고마운 딸과 아들. 반장, 부반장을 맡으며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찾아 했다는 아들 유재범(34)씨는 “키가 큰 편이라 ‘우유를 많이 먹고 자랐겠다’는 소릴 많이 듣지만, 날짜 지난 우유 외엔 구경도 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목이 타고 힘겨워도 아까워서 감히 우유에는 손을 대지 못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한번은 도시락을 집에 두고 와 어머니가 유니폼을 입은 채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친구가 ‘너희 엄마 오셨다’고 외치는 바람에 반 전체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 부끄러웠지요.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철없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초창기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반대하기도 했지만 우유 배달 덕에 생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 갔고, 규칙적인 생활은 건강을 덤으로 선물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약을 멀리하고 잠을 깊이 자, 면역력을 기르고 체질화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신앙의 영향도 컸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자부심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김임호씨의 말은 겉만 보고 섣불리 짐작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가늠하는 게 얼마나 큰 실례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81년, 82년에는 회사에서 개최한 판촉대회에 나가 일본춤과 스페인춤을 연습해 선보이기도 했다. 워낙 운동신경이 뛰어나 배우는 것도 쉬웠다.우유 배달 덕에 40대 후반에는 꿈에 그리던 ‘내 집’도 장만할 수 있었다. 10월이면 손주가 태어날 예정이라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라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손주가 태어나기 전날까지라도 자전거를 계속 움직일 것”이라는 김임호씨. 건강 비결을 조금만 더 귀뜸해 달라는 요청에 ‘자연스럽게 살자’는 말을 덧붙였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을 느낍니다. 때문에 생소한 보양식, 고급 음식 보다는 된장찌개처럼 소박하고 낮춰 먹는 음식이 건강에 더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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