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기후가 반대인 남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는 두개의
큰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수도는 웰링톤이지만, 첫 수도였던 최북단의 조그만 마을 ‘러쎌’에서 1840년 오클랜드로 옮겨와
25년동안(1840년~1965년) 영국의 식민지시대에는 오클랜드가 수도였다. ‘돛배의 도시’로 불리우는 오클랜드는 북섬에서 제일 먼저 형성된
도시로 경제나 규모가 가장 큰 뉴질랜드의 중심도시이다. 1840년 당시 총독이었던 윌리엄 홉슨(William Hobson)이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으로부터 지금의 땅을 사들이면서 이 도시의 역사는 시작한다.
도시의 이름은 뉴질랜드 초대 총동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되었는데, 어린시절 우리가 읽어 본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의
‘15소년 표류기’의 주인공들이 바로 오클랜드 출신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안 종족 중에서 가장 체격이 크며 특히 이들의 나무조각은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마오리족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즐겨 부르는 ‘비바람이 부는…’ 으로 시작하는
‘연갗라는 사랑노래는 마오리족 남녀간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이 노래는 한국동란에 참전한 뉴질랜드
군인들이 야학에서 한국의 어린이에게 가르쳐 주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 길 건너편의 빅토리아
공원
시내 중심가인 퀸 스트리트에서 남서쪽으로 10여분 남짓 걸다보면 1번 고속도로와 국도가 교차되는 지점에 있는 빅토리아 공원에 이르게 된다.
이 공원의 맞은 편에 우뚝솟은 오래된 벽돌 굴뚝이 눈에 띈다. 이 굴뚝이 유명한 빅토리아 파크마켓의 상징물이다. 본래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였던
벽돌 건물들을 새롭게 개조해서 지금은 대규모 쇼핑센터로 탈바꿈을 한 새로운 명소이다. 개략적인 모습은 중앙시장 골목을 연상케 하는 이 곳에서는
중고 일용품을 비롯해서 각종 액세서리, 의류와 골동품, 토산품 등을 염가로 구입할 수 있다.
▲ 상징인 굴뚝의
모습
특히 시내의 백화점들이 문을 닫는 토 요일과
일요일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길이가 1km정도로 길게 나열된 점포들을 돌면서 쇼핑을 해보면 그다지 사고 싶은 것은 많지 않다. 다만
양을 원료로 하는 제품과 깨끗한 자연에서 만들어진 건강식품, 마우리의 토속품 정도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무료함을 달래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들렸다가, 장보는 재미로 돌면서 자세히 살피다 보면 오클랜드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임을 알 수 있다. 거기다 매장 안에는 여러나라
음식을 함께 파는 음식백화점 같은 형태의 대형식당이 있어서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 곳 프리만스베이 지역은 초창기부터 이주민들이 거주를 시작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빅토리아 파크지역은 당초에는
상공업지로 개발한 곳이다. 하지만 경사진 언덕이 많고 도로사정이 나빠서 처음에는 이용가치가 많이 떨어졌었다. 그래서 1905년 이곳에 쓰레기
소각장을 세우게 되는데, 당시 오클랜드시에서는 높이 125피트 높이의 굴뚝의 마지막 벽돌을 쌓는 날에 화려한 기념식을 거행하면서 이 부근의
활용도를 높히려 상당히 노력하였으나, 그 후에도 계속해서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다시 소각로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하여 전력생산을 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열효율이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다른 전력생산 방식을 택함으로 발전소로 쓰이던 건물은 다른 용도로 쓰여졌다. 1915년에는
짐수레를 끌고 다니던 말들이 묵는 2채의 커다란 마굿간이 세워졌으며, 1940년대 말쯤에 이르러서 도심의 급속한 성장으로 소각장 시설로 쓰이던
건물이 낙후되어 문을 닫게 된다.
1972년부터 서서히 소각로가 파괴되기 시작하여 1981년까지 일부 소각처리작업을 하였으나 이를 중단하고, 시티 카운셀에서 소각장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를 개조하여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독특한 분위기의 쇼핑 명소로 변신시켰다. 그때부터 현재와 같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바뀌었다. 1984년에는 마굿간 건물과 안쪽 정원 사이의 진입로에 전 총리인 ‘로버트 멀둔’경이 ‘명예의
거리(Celebrity Walk of Fame)’를 만들고 뉴질랜드의 유명인사인 처음 에베레스트봉을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경, 소프라노 가수
‘키리 데 카나와’, ‘레이첼 헌터’를 비롯한 인기 연예인의 손과 발바닥 자욱을 남기면서 화제가 되어 더욱 유명한 관광명소로 변하게
되었다.
▲ 윗 층은 공장형태의
점포
내부로 들어서 보면 조금은 복잡한 형태로 얽혀있는 동선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이를 보존하려는 의지는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들면서 이웃가게에 들른 분위기를 만든다. 통로에 가자런히 걸려있는 꽃화분들, 자기상품을 정리하면서 보내는 따스한 눈길, 모든
질문에 친절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우리네 옛 장터를 연상시킨다. 한나절 돌고 한식당에 들러 ‘비빔밥’을 시켜 먹노라니,
참새떼들이 턱없이 날아 들어와 흘린 음식물을 쪼으며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유병우 소장은 충남고, 충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꾸밈건축평론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건축대전 초대작가를 역임했다. 현재 CNU
건축사사무소 소장이며 저서는 판시도, 대전의 건축, Once In Every Lifetime 등이 있다. http://www.ucnet.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