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선거를 바로 앞둔 5월 29일 오후 3시경. 중구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에는 2천여명의 시민들이 한데 몰려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소 젊은이들의 거리로 알려지면서 10대 청소년들의 주름잡던 거리였지만 이날 모인 사람들은 어림잡아 40대 이상이 대부분.
이번 지방선거에서 최대 접전지로 낙인찍힌 대전에서의 승리를 위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잠깐 동안
으능정이 거리에서 모습을 보였는데, 노인들은 일찌감치 신문지를 들고 나와 자리를 잡았던 터. 박근혜 대표 얼굴 한 번 보려고 자리까지
잡은 어르신들을 가로막은 데다 사다리까지 놓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카메라맨들을 노인들은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아무리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지만 중요한 한 컷을 잡으려는 카메라맨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이다. 욕을 먹더라도 촬영은 해야겠기에 진땀
흘리며 구도를 잡는다. 신속 정확한 보도는 원고(기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언론사 사진기자들에게도 이러한 룰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러기에 욕을 먹더라도, 또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더라도 한 장의 사진만은
건져야 한다. 근무가 없는 날, 낮잠을 자다가도 산불이 났다는 제보를 받으면 달려 나가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은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을 통해 “어제 산물이 크게 났었네∼”하며 동요한다. 사진기자는 그러기에 군에서 말하는 ‘5분 대기조’ 같다.
대전지역에서 활동하는 사진기자들은 자체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한국사진기자회 대전·충남지부라는 모임을 통해서다. 정기모임 때 초청해 달라는
기자의 말에 이중호(중보일보 사진부장) 회장은 “우리요? 우린 아무 때나 모여요. 잠깐, 언제 시간돼나 확인해 볼게요”하며 바로 전화기를
꺼내든다. 대전일보 류창화 사진부장과 충청투데이 우희철 사진부 차장에게 전화를 건 이 회장은 “다음주 월요일에 시간이 된다네요, 그 때
보시죠”한다. 일정은 그렇게 바로 잡혔다. 시간이 흘렀다. 기자들을 만나는 만큼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다. 저녁 7시. 사진기자회의
유일한 홍일점 송미옥 기자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아마, 제대로 시간 맞춰 오기 힘들 거에요. 일 끝나는 시간이
제각각이니까요.”야근이라 치면
본지 기자 또한 만만치 않건만 이날 모인 사진기자들 모두 자리하니 밖은 벌써 어두컴컴하다. 그러니, 시장기가 오죽할까, 형식적인 인사 집어치고
배고프다며 자리에 앉는다. ‘탐방’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이렇게 취재협조가 안되는 모임은 없었건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휘말려 진지한 인터뷰
불능, 취재수첩을 덮는다. 내친김에 술 한 잔 하며 이 얘기, 저 얘기.
카메라 폰을 비롯해 디지털 카메라 한 대 쯤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카메라 보급이 보편화 된 요즘 사진기자들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았을까? 기관이나 업체마다 홍보팀을 따로 구성해 디지털 사진을 보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크게 달라진건 없어요. 어차피
홍보용사진과 우리가 찍어야 하는 사진의 성격은 틀리거든요. 오히려 과거 사진기자들은 전문성을 갖춘 특수계층에 속했지만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나
인터넷 발달로 인해 우리 일을 어필하기 힘들죠. 사진을 잘 찍었다기보다는 포토샵을 얼마나 잘 했는가로 연결되니…” 대전일보 류창화 부장은 인터넷
발달 등으로 본연의 사진보다 포토샵에서 만들어지는 사진에 관심을 갖는 요즘 세태가 아쉽다고.
대부분 보도용 사진을 촬영해야 하는 사진기자들은 연출보다는 사실적인 사진에 익숙하다. 그래서 작업되지 않은 사진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류부장은 사진 한 장과의 힘겨운 싸움에도 대부분의 사진기자들 심성이 맑은 이유는 사실과 정확성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생활습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진기자들의 삶은 때때로 고달프다는데, 한가지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사건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사람을 찍으려고 검찰청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는데, 그 입구가 가장 잘보이는 곳이 정화조 옆입니다. 사진기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보니 명당자리 차지하려고 하루 종일 정화조 옆에 쪼그리고 있을 때가 있어요. 우리 용어로 ‘뻗치기’라고 하는데, 원하는 사진 찍을
때까지 안비키거든요. 그런데 여름철 바람부는 날 그 향기는 아주…”
상상을 하는지 말을 끝까지 잊지 못하는 뉴시스통신의 정재훈 기자. 음식 앞에놓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입맛은 떨어지고 다들 술이나 한 잔
하며 웃어넘긴다.
마지막으로 한국사진기자회 대전·충남지부 이중호 회장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당부.“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내용을 함축해야 하는 만큼 사진기자들은 이를 위해 무척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신문 보실 때 그냥 흘려버리지 마시고 관심있게 봐
주세요.”
▲ 한국사진기자협회
대전/충남지회 회원
현재 한국사진기자회 대전·충남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자는 17명. 일이 힘겨운 만큼 틈나는대로 모여 친목을 다지는 이들 회원들은 개인적으로 하는 봉사활동 외에 회원 모두가 합심해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