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소재로 [오래된별]펴낸 고광률 작가
5.18소재로 [오래된별]펴낸 고광률 작가
  • 이루리 기자
  • 승인 2006.06.2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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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역사, 프리즘을 거친 역사에는 관심 없다"

1979년 끝물에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냥 서글펐다. 이듬해 봄이 온 것을 알았다. 이 봄을 ‘서울의 봄’이라며 각별히 불렀으나, 학교나 교과서에서 배운 바 없었기에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봄을 배운 바 없어 봄이 필요치 않았고, 이를 떠드는 자들을 도울 수 없었다. 때문에 1980년 봄, 광주에서 민주와 자유가 어떻게 백주에 만신창이가 되어 개죽음을 당했는지 알지 못했고, 알 도리가 없었다. 1980년 5월 광주, 이들은 살아 깃발이 됐고, 죽어 별이 되었다. 
                                                                                          - 작가 서문 중에서

91년 <통증>으로 등단한 고광률 작가가 2002년 <어떤 복수> 이후 4년 만에 <오래된 별>을 내놓았다. <오래된 별>은 1987년 시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이후 7년간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임철우 작가의 <봄날>, 홍희담 작가의 <깃발> 등 그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들은 꽤 있었다. 26년이나 흐른 지금, 80년 5월을 다시금 불러와 소설로 재현한 것에 대해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고광률 작가는 권력의 그릇된 순환이 아직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집필하게 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승자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승자의 역사에 가려 창고에 쌓인 왜곡된 진실과 공익을 꺼내 빛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고광률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근현대사에 느끼는 거리감을 좁히고 싶은 욕심에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 보다는 만화책처럼 단순하게 소통하는 법을 택했다. 덕분에 <오래된 별>은 친근하고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로 탄생했다. 왜 5.18을 소재로 다루게 되었나 8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당시 모 대학 미대에 합격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일이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까마득히 몰랐다. 나는 1980년 당시 ‘신분’이 없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예기치 못했던 허방으로 떨어져 학업도 할 수 없었고, 어쩔 바를 찾지 못했다. 다만 비 오는 날을 빼고는 하릴없이 책만 읽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자유와 민주를 배운 나는, 그 당시 자유·민주라는 단어의 필요성도,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리고 7년 뒤 광주청문회가 시작되면서 밝혀진 사실들이 너무나 기막히게 느껴졌다. 하나의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죄 없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뒤늦게 분노했다. 그때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소설을 쓰려고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92년 광주에 내려갈 기회가 있어 모 대학을 방문했는데 전단지 하나가 바람에 날려 내 발 아래 떨어졌다. 가공할 만한 무협으로 악당을 퇴치하는 내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잘못된 권력이 끼치는 악영향을 보여주려 한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 전단지를 손에 들고 불현듯 그릇된 권력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산된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정의, 진실, 공익이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문하면서 그 후 5년 동안 소설의 초안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재작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보면서 민중의 힘에 의해 쟁취된 민주주의 역시 권력에 이용되면 비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학생 후배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아는지, 6월 항쟁을 아는지 물었더니 극히 이론적인 내용만 앵무새처럼 읊조릴 뿐,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근현대사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서 5.18을 토대로 소설을 쓸 때가 되었다고 마음먹었다. 만화책처럼 쉽게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며 재미를 줄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스토리 중심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통령 탄핵 직후 쓰기 시작해 50여 일만에 마무리했지만 선뜻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다.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정치적인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묵혀 두었다가 올해 5월이 되어서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취합한 과정과 주변인들의 반응은 앞서 말했듯 5.18 민주화운동의 목격자도 아니고, 광주 출신도 아니다. 뒤늦게 취재를 하러 다니면서도 확연히 개발된 광주를 들쑤시고 다니며 상처를 되새기는 방법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18 관련 사회과학 서적, 증언?사진집 등을 닥치는 대로 읽고 또 공부했다. 소설을 탈고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더니 같은 세대 사람들은 ‘부끄럽다’, 요즘 학생들은 ‘이게 정말 사실이에요’ 되물었다. 5.18을 바탕으로 썼지만 스토리 중심에 추리와 멜로 기법을 적용한 만큼, 개인적으로는 부담을 갖지 말고 재미있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목이 왜 오래된 별인가 처음에는 ‘오래된 깃발’로 제목을 삼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깃발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고, 내용상 소망과 한을 담은 ‘별’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별은 역사를 품고 또 품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하늘에서 제 빛을 잃지 않는다. 민주화운동으로 쓰러진 이들의 넋도 별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하고 싶었다. 진실, 정의, 공익…. 특히 우리나라처럼 천민자본주의가 활개를 치던 국가에서는 권력은 자본과 뭉쳐져 악순환 되기 쉽다. <오래된 별>은 대통령 탄핵사건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형식으로 다루면서 역사의 진실이 갖는 힘이 영원함을 전제로, 부당한 권력의 추구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오는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런 파행적인 힘의 구조로 인해 어떤 모순과 기형적 실체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얼마나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나는 부당한 권력의 상속과 강화 속에서 저항하는 군상의 몸짓을 담고 싶었다. 창작집 <어떤 복수>에 이어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다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나치 전범인 아버지를 고발해야 하는 여자 변호사의 갈등을 그린 영화 <뮤직박스>를 함께 본 적이 있다. 아버지의 안위와 역사적 단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정의를 택한 주인공을 보며 ‘굳이 아버지를 고발해야 하느냐’는 학생들의 질문이 나와,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화는 아버지라 할지라도 과거 청산에서 예외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몇 해 전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본이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러나 묵묵히 쳐다보고 있는 일본인들이 ‘왜 너희 스스로는 내부에서도 과거 청산을 제대로 못하느냐’고 되묻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물론 그들이 우리를 그렇게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지만, 내부에서부터 과거를 제대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언론의 프리즘으로 보는 세상은 바로 가늠키 힘들다. 세월이 두려운 것은, 진실은 가고 그 현란한 해석만 난분분(亂紛紛)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진 자’의 말과 글을 믿지 않는다. 누군가는 단세포적으로 복잡하지 않게 역사에 대해 툭툭 내뱉고 속 시원하게 단죄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 권선징악이 통하는 사회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소설가로서 산다는 것은 나는 능력이 빼어나 소설을 쓰는 게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도 글을 소일거리 삼아 쓰지는 않는다. 문학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 권력이라는 힘에 의해 숨겨지거나 묻혀진 진실을 이야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구다. 교육과 미디어에 포장된 진실을 까발리고 일갈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 고광률 작가
국내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소설을 쓰기는 더더욱 어려워 농담 반으로 ‘한 달만 나를 어디에 가둬 달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게다가 소설은 시간, 체력과의 싸움이다. 많은 정신적 육체적 소모가 진행되지만 내게 소설을 쓰는 일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쓰게 되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다음 소재를 계획해 두지는 않았다. 한일 관계나 교육 문제 등 어떤 사안이 불거지면 의무감에 매이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매달려 보고 싶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또다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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