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는 그 이름보다 외관으로써 먼저 대전시민들에게 알려졌다. 공사가 점차 진행되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
이렇게 특별히 디자인된 건물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것도 여러 가지 행운 중의 하나다. 조금은 부럽다는 뜻으로 김봉건 소장에게 말은 건네자 그는 “우리 연구소가 올해로 36년 됐는데 독립된 건물을 갖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 동안에는 계속 남의 건물 신세를 졌죠”라고 말한다. 오랜 더부살이 끝에 세상에 하나뿐인 문화재연구소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이다.
연구소건물 디자인은 2000년 현상공모를 통해 채택됐다.
미국에서 건축공부를 한 서혜림이라는 건축가가 그 주인공이다. 여러 설계도안
중에서 서혜림의 작품이 눈길은 끌었던 이유는 첫째, 발굴작업을 상징하는 ‘트렌치(도랑파기)’형상을 이용한 점과 둘째, 땅이 가진 특성을 건물에
최대한 반영했다는 점이다.
문화재연구소 건물을 크게 앞동과 뒷동, 둘을 연결하는 중간 유리동으로 나뉜다.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를 기본으로 계단과 중정 등 일부분에 와이어를 접목한 철골구조를 사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앞동 외벽의 콘크리트. 나뭇가지 모양의 무늬가 콘크리트 전면이 새겨져 있다. 건축가의 의도에 의하면 뒷편으로 보이는 ‘산의 구릉이 겹쳐진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노출콘크리트는 재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유로운 입면을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가 기존에 보아온 공공기관이 가지는 딱딱함을 훌훌 털어버린 디자인과 소재구성이 이채롭다. 콘크리트와 나무, 유리 갈바크린이라는 금속까지 건축가는 건물의 한 곳도 같은 재료로 마무리하지 않았다. 때문에 앞, 뒤, 좌, 우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또한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건물 제일 윗면이 경사를 세부분 모두 다르게 주어 지루함을 덜어냈다. 마치 뒤로 보이는 산 구릉과 하나의 풍경인 것처럼….
공간을 이동하며 밟게 되는 바닥재 또한 예사롭지 않다. 시멘트 위에 ‘베이스패널’이라는 재료를 덮은 것인데, 밝은 회색빛의 이 소재는 기존 시멘트만으로 된 바닥과 비교해 정돈되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바닥과 연결되는 계단 또한 특이한 구조. 한걸음 올라서려고 아래쪽에 시선을 주면 층층이 뚫려있는 계단 사이로 아래의 공간이 보인다. 잠시 아찔한 느낌을 받고서야 윗 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
건축을 전공한 김봉건 소장이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앞 뒤 두 동을 연결하는 ‘유리동’공간이다. 주변을 마음껏 투영시키며 닫힌 듯 보이지만 열려있는, 계단과 통로를 아우르며 힘차게 솟아있는 공간. 유리벽을 맞대고 서면 4층에서 1층이 보이고 1층에서는 하늘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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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문화재연구소 | ||
구석구석 작가의 의도가 녹아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이 곳은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단체견학을 올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아직 많이 시민들이 찾는 공간은 아니다. 건물이 가지는 개방성만으로 일반인들의 발길을 잡기는 어렵다는 것. 그러나 도심의 일상성에서 한번쯤 탈출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건물의 매력과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궁금증을 가져봐도 좋겠다.
History
1969. 11. 5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 설치
1973.
3. 9 문화재연구실에서 문화재연구 담당관실로 직제개정
1975.
4. 17 문화재관리국 소속기관으로 문화재연구소 직제개정
1988. 9.
1 유적조사연구실 신설
1990. 1. 3
경주문화재연구소, 부여문화재연구소,
창원문화재연구소
목포해양유물보존처리소 신설
1995. 11. 22 국립문화재연구소 기관명칭
변경
1999. 5. 24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청 승격
2003. 7.
25 건조물연구실 신설
2004. 1. 17 대덕연구단지 신청사
이전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동 472번지 ☎042-860-9125 www.nri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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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건 소장이 말한다!! “시민에게 다가가는 연구소 될 것” 연구소에 대한 소개 연구소의 연계와 역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