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 신월리 335-16번지에 위치한 신정마을은 20여 호 남짓의 작고 아담하지만 평화스러운,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이 마을 맨 위에는 여느 집보다 크고 잘 정돈된 집 한 채가 있고 30여 평 안마당엔 50여 년 된 등나무 그늘이 아름답게 드리워져 있다. 이곳이 바로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보금자리인 ‘평화선교복지회’다. 지난 1998년 3월 개원한 이래 현재 16명의 정신지체 장애인과 이들을 돌보는 2가정의 부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 어느 가정보다 화평하게 살아가고 있어 오늘의 복지회가 있기까지 숨은 사연들을 백영호 원장을 만나 들어봤다.
‘평화선교복지회’의 백영호(61) 원장은 이곳 신정마을의 토박이다. 지난 1960년 교육적,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청주를 거쳐
서울로 이사를 했지만 어릴적부터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여러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교회지킴이’로 한평생 살아왔다.
그저 욕심없이 평범하지만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오던 그에게도 막내아들이 정신지체 장애아로 태어나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다. 그 아들을 위해 백 원장 부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드리며 장애인학교를 보내는 등 온갖 정성을 쏟으며 편할날 없이 심혈을 기울였지만 결코 형편은 좋아지지 않았다.
장애우들을 위해 복지시설 마련 시급
장애인 자식을 둔 가정의 한결같은 고민은 그 장애자식을 정상인처럼 정성을 다해 보살펴 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상적인 다른
자녀들의 성장과 장래에 미치는 영향, 거기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가정일수록 부부의 맞벌이 문제 및 이웃과의 여러 문제점 등을 안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장애인 자녀를 복지원 등의 전문 시설에 맡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백 원장 부부도 단단히 결심하고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있는
유명하다는 복지시설은 다 찾아다니며 알아보았지만 한결같이 5천만원 이상의 보증금과 매월 60만원 이상의 생활비를 요구해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몇 달 동안을 그렇게 낙심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리던 어느 날 “네가 직접 장애인 자녀들을 모아 양같이 키우라”는 주님의 기도응답을 받고 이에
용기를 얻은 백 원장은 같은 장애인 학교 출신의 부모들을 만나 상의하여 이곳 진천 신월리에 ‘평화선교복지회’를 세우게 된
것이다.
장애우 시설의 문제점은 복지시설간의 양극화 현상
사실 10여 년 전이나 현재까지도 장애인 복지시설 문제는 빈부의 소득격차에 따라 복지시설간의 양극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법인과 같이 법인체의 경우엔 부유한 자녀들의 여유 있는 자체생활자금은 물론 정부의 상당한 지원과 각급기관 단체 및 기업들의
후원으로 재정안정은 물론 각종 자원봉사의 물결로 운영상의 문제점이 없지만, 개인 신고시설의 경우엔 빈약한 생활자금과 후원단체의 결핍으로 인하여
봉사자들의 월급은 커녕 생활비도 모자라 일부는 자급자족해야할 형편이다.
철저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평화선교복지회’
문제점들을 깊이 고려하여 백 원장은 세밀하고 확고한 몇 가지 운영지침을 세워놓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첫째는
‘철저한 예배생활의 정착’이다. 오전 6시30분과 저녁 7시30분 이렇게 두 차례 예배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처음에는 장애우
자녀들이 익숙지 않아 예배 중에 딴 짓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뜨는 등 문제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그 시간만 되면 각기
제자리에 앉아 엄숙히 기도하며 찬양을 부른다. 최근에는 몇몇 교회에서 특송을 했을 정도로 예배를 통한 생활은 장애우들의 혼란스러웠던 정신상태에
차츰 안정을 주고 있다.
둘째는 ‘장애우들 개개인의 세심한 생활체크’인데 똑같은 정신지체 장애우 일지라도 개인별로 나타나는 현상이 모두다
제 각각이다. 선천성인 경우와 후천성인 경우도 모두 다른데 후천성인 경우 교통사고나 각종 재해 및 외부충격에 따라 각기 다르다. 학교에서 왕따를
심하게 당한 경우, 가정폭력으로 인한 경우, 교통사고로 인한 뇌손상의 경우, 임신 중 연탄가스의 다량노출의 경우 등 각기 다른 생활습관과 육체적
증세들을 보인다.
특히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우들 대부분이 모두 20대 전·후의 남자 청년들이어서 성(性)적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
이러한 각기 다른 생활 습관과 증세를 면밀히 파악, 개인별로 카드와 일지를 작성하여 고쳐 나아가는 것이 주요 과제이다. 그래서
‘평화선교복지회’에서는 개인별로 약을 제조하는 일도 바쁘지만 음식과 의복 및 잠자리까지 모두 일일이 챙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신경쓸 겨를 없이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다.
셋째는 ‘충분한 재활활동의 전개’이다.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절대로
혼자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활동과 단체생활을 통해 육체적·정신적으로 안정된 치유를 받아야 한다. 그런 관계로
‘평화선교복지회’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 청주 곰두리 수영장에서 시원한 물놀이와 샤워를 통해 즐거운 생활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밖에도 인근 이월산에 등산하기, 직접 채소 가꾸기, 비누작업, 자전거타기, 도자기 만들기 등 쉴 틈 없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장애우들이 좋아하는 것은 수영과 비누작업이다. 다만 비누작업은 후원기업의 사정으로 지금은 중단되어 백 원장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
넷째는 ‘자신의 일은 직접 하기’이다. 이 일은 너무나 이행시키기 힘들 뿐더러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오직 인내하면서 꾸준히 그리고 연속적으로 지도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처음에는 전혀 불가능했던 습관들이 차차 익숙해져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기만 하다. 주로 양치질과 세면, 잠자리 정리하기, 자기 옷 정리하기, 식기 제자리 놓기, 신발정리 등으로 아직도 몇몇 장애우들은 생활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한 실정이다.
꿈에 그리던 새 보금자리 곧 이전
백 원장은 위와 같은 운영지침을 세워놓고 8년여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장애우들의 나쁜 습관과 게으름 등은 이제 거의 사라져 요즈음은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또래들끼리 싸우고 심한 편식에 괴성을 질러대 이웃으로부터 집단 항의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뛰어다니는 등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나쁜 습관과 증세로 인해 한 때는 복지사업을 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장애우들의 이런 문제는 거의 해결 되었단다. 단지 외부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것이 걱정이라며 그 중
제일 큰 문제가 복지원이 마을 안에 있다보니 동네 주민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정부로부터
신축자금을 지원받아 동네와 떨어진 조용한 장소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신축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중 대지 구입비용과 공사비대금 일부인 5천만
원은 직접 준비했다. 백 원장은 “늦어도 올해 안에는 이사를 할 수 있어 우리가족 모두가 희망에 부풀어 있다”고 말하면서 “더욱 반가운 일은
주위에서 ‘평화선교복지회’를 보는 시각도 예전과 달리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아낌없는 성원을 꾸준히 보내주고 있다”며 환한 표정을
짓는다.
사랑 가득한 복지사업 펼쳐 모든 장애우에게 희망을
특히 이월 감리교회의 예배와 점심제공을 비롯하여 (주)칠만공사의 만찬 제공, 청주물방울 봉사대의 이발과 청소, 인근부대 장병들의 봉사활동,
인근교회 청년부들의 찬양모임 등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후원과 기도의 힘은 생각할수록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한편, 백 원장은 “장애인들에
대한 국민의 편견과 소홀함이 사라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정부의 복지정책 확장이나 법인체 중심의 지원체제가 바뀌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 모두가 나의 가족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현실감각을 가지고 내 가족처럼 장애우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라며 “사랑이 가득 찬 복지 사업만이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고 희망을 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는 백 원장은 희망찬 소신을
밝혔다.
/ 김주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