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값싼 식품 소재인 라이스 페이퍼를 이용해 버려지는 전자폐기물과 산업 폐수에서 고순도의 금을 친환경적으로 회수하는 획기적인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연구재단은 고려대 이정현 교수 연구팀이 전분 기반의 식품 소재인 라이스 페이퍼를 간단한 방법으로 화학적 개질하여 폐수 내 금을 선택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고성능 흡착제를 개발했다고 15일 밝혔다.
금은 첨단 전자제품, 화학 촉매, 의료, 에너지 소자 등 현대 산업 전반에 쓰이는 핵심 자원이지만 매장량이 한정돼 있어 폐기물에서 이를 다시 추출하는 ‘도시광산’ 기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흡착 기반 회수 기술은 독성이 강한 유기용매와 석유계 화학물질을 다량 사용하여 도리어 환경 부담을 초래하는 모순이 있었다.
기존의 분말 형태 흡착제는 금을 흡착한 뒤 정작 물속에서 흡착제 자체를 다시 수거하기가 매우 까다로웠고, 천연 성분을 쓰는 바이오폴리머 기반 흡착제는 물속에서 형태를 유지하고 녹아내리지 않게 하려고 복잡한 화학적 가교 공정을 거쳐야만 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제성 문제를 안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미 일정한 필름 형태로 가공되어 시장에 나와 있어 별도의 복잡한 성형 공정이 필요 없는 라이스 페이퍼의 구조적 장점에 주목했다.
독성 유기용매를 완전히 배제하고 물을 기본 용매로 사용하는 친환경 ‘수계 조건’에서 라이스 페이퍼를 화학적으로 개질했다. 이 공정을 통해 라이스 페이퍼 고유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표면에 수많은 미세 구멍이 뚫린 다공성 구조와 뛰어난 수중 기계적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라이스 페이퍼 흡착제는 강한 산성을 띠는 전자폐기물 폐수 속에서 놀라운 성능을 발휘한다. 폐수 내부에서 정전기적 인력과 킬레이션 메커니즘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구리나 니켈 등 다른 가짜 금속 이온들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오직 금 이온만을 선택적으로 끌어당겨 결합한다.
특히 금 이온을 단순히 붙잡아 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흡착된 금 이온의 일부를 스스로 금 나노입자로 환원시키는 독특한 화학적 특성을 보였다. 이 자발적 환원 작용 덕분에 금 흡착 효율과 선택성이 극대화된다.
금 성분을 가득 머금은 라이스 페이퍼를 수거한 뒤의 회수 공정도 매우 간단하다. 흡착제를 높은 온도로 가열해 유기물 성분을 태워 없애는 단순한 ‘소성 공정’만 거치면 다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도 99.9% 이상의 고순도 금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연구팀은 기술경제성 분석(TEA)과 전과정 환경성 평가(LCA)를 통해 이 기술이 기존의 광산 채굴 및 화학적 금 생산 공정과 비교했을 때 경제적 비용과 환경적 오염도를 모두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음을 명확히 증명해냈다.
이번 연구의 확장성도 무궁무진하다. 전분을 주성분으로 하는 식품 소재라면 라이스 페이퍼뿐만 아니라 잡채에 쓰이는 당면, 음료에 들어가는 타피오카 펄 등 녹말 기반의 모든 소재에 본 연구 전략을 그대로 적용해 고성능 흡착제로 탈바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기술의 실용화를 위한 현실적인 과제와 해결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일반 가정이나 식당에서 버려지는 소비 후 식품 폐기물을 원료로 수거할 경우 오염이나 부패, 세척 비용, 균일하지 못한 성분 조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 대규모 산업 공정에 적용할 때는 식품 제조 공장 등에서 규격 미달로 버려지는 외면받는 전분 소재나 녹말 기반의 친환경 포장재 부산물 등 오염이 없고 조성이 일정한 ‘산업 부산물’을 원료로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상용화 전략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향후 실제 산업 현장 적용을 위해 흡착 공정의 대형화(스케일업)와 최적화 연구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정현 교수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싸고 친환경적인 바이오매스 소재에 간단한 아이디어를 접목해 청정 자원순환을 가능케 하는 고부가가치 소재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 금뿐만 아니라 최근 글로벌 공급망 수급 문제가 심각한 리튬, 희토류 등 다양한 핵심 광물 및 희귀 금속 자원을 친환경적으로 회수할 수 있도록 천연 물질 기반 흡착제와 분리막 연구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