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전주는 흔히 한옥마을이 연상되는 도시로 기억된다. 그러나 시간의 지층을 한 겹만 벗겨내면, 이 도시는 이미 10세기 한반도의 격변을 관통한 국가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의 전주는 후백제의 수도 완산주라 불리워졌고, 그리고 그 핵심 공간으로 거론되는 흔적은 종광대이다. 전주시는 지금 후백제의 흔적인 종광대를 둘러싸고 재개발과 복원사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재개발인가, 복원인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신라 체제가 붕괴하던 시기 새로운 국가를 세웠고, 그 도읍으로 전주를 선택했다. 완산주는 단순한 지방 행정 거점이 아니라 군사·정치·의례가 집약된 수도였으며, 종광대는 그 도성 체계 속에서 핵심 기능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큰 공간이다. 아직 ‘추정지’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지형 조건과 문헌 기록, 인근 유적의 분포는 이곳이 후백제 전주의 상징적 중심부였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문제는 현재의 선택이다. 종광대를 재개발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남는 것은 단기적 성과뿐이다. 건물은 들어설 수 있지만, 도시는 기억을 잃는다. 반대로 복원을 말하면서도 학술 조사와 고증을 건너뛴다면, 그것은 또 다른 훼손이다. 문화유산 정책의 기본 원칙은 이미 국가유산청의 권고에 분명히 제시돼 있다. 무리한 재현이 아니라, 발굴과 연구를 선행하고 그 성과를 토대로 단계적 보존과 활용을 병행하라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18일 교통방송 시사 대담(전화)에 출연한 이후 청취자들의 반응은 인상적이었다.“ 왜 전주는 늘 재개발부터 이야기하느냐”, “후백제는 국가 역사인데 왜 전주시가 이렇게 소극적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역사 애호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도시 정책과 재정 투입 방향에 대한 시민적 문제 제기였다. 재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에서 전주시의 선택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인 셈이다.
종광대 문제의 핵심은 재개발이냐 복원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관건은 ‘어디에, 어떻게 재정을 투입할 것인가’이다. 종광대는 대규모 토목 예산을 한 번에 쏟아붓는 사업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학술 조사와 정비에 우선 투자하고, 이후 역사 경관 조성, 해설 체계 구축, 디지털 콘텐츠를 통한 해석으로 확장하는 연차적·선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이는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도시의 역사적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전주는 이미 한옥마을이라는 성공 사례를 갖고 있다. 이제 그 성과를 더 깊은 시간, 후백제로 확장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종광대는 그 시험대다. 재개발이냐 복원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전주는 어떤 역사도시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전주시가 서 있다. 역사는 비용이나 투자의 문제는 아니다. 종광대를 외면한 전주는 반쪽의 역사도시에 머물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