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야 선생의 학문과 철학사상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인산서원 배향인물 박지계선생을 조명하는 아산학연구소 제23차 학술대회가 24일 온양제일호텔 2층 크리스탈홀에서 개최되었다
학술대회에는 맹주완 아산학연구소장, 박종덕 인산서원 복원 추진협의회회장, 홍성표 아산시의장, 김희영 아산시의원, 김윤섭 복기왕 국회의원 수석 보좌관 등이 참석하였고, 복기왕 국회의원은 축전으로 참석을 대신하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아산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인산서원에 배향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네 차례에 걸쳐 이어온 학술행사의 마지막 단계로, 임진왜란과 광해군 시대의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도 성리학자로서 학문과 도학 실천에 헌신했던 잠야 박지계(1573~1635) 선생의 학문적 위상과 사상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한양대학교 김용헌 교수는 잠야 박지계의 철학사상과 사상사적 의미에 관한 발표에서 "잠야 박지계가 오늘날 우리에게 조선 중기의 저명한 학자로 알려진 것은 인조반정 직후에 함께 발탁되어 중앙정계에 진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조와 그의 생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일련의 의례논쟁에 참여한 두가지 역사적 사건에 관련해서 였다"면서, "잠야선생은 무엇보다도 효를 강조하고 이율곡 선생을 존경하였으나 당시 기호학파의 정통이었던 율곡에서 송시열로 이어졌던 학맥과는 다른 관점을 가졌던 학자였다"고 밝혔다.
두번째 발표자인 건양대학교 김문준교수는 잠야 박지계의 도학사상과 학문관에서 " 잠야 박지계는 17세기 조선 예학의 한 부분을 점유했던 학자로서 일찍이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과 실천궁행에 전념했던 산림처사였다"면서, 선생은 예학에 뛰어난 학자로서 알려져 있는데, 생리학에도 거경에 입각한 체험적 수양과 경학과 성리서에 기반한 궁리를 통해 일가를 이룬 성리학자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당시의 왕실전례에 관한 사계 김장생의 예론에 강력하게 맞섰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주자학 비판자, 율곡학파의 이방인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강력한 주자학자이며, 율곡의 학문관을 추숭한 율곡학 계승자였다"면서, "선생은 임진왜란과 호란이후 국가재건과정에서 조선 지성계에 주자학과 예 질서를 강력하게 재건하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성리학과 예학은 이러한 목적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세번째 발표자인 김일환 전 호서대학교 교수는 잠야 박지계의 강학활동에서, "박지계 선생은 역사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제자인 덕산 출신 조극선의 일기가 발견됨에 따라 그의 행적이 상세하게 밝혀지기 시작했으며, 아산지역의 유학적 전통은 잠야의 선조 말엽 아산정착을 기점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정도로 그의 비중이 크다"면서, "아산정착기에서부터 성리학에 집중하여 포저 조익 등과 학문적 논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였으며, 혈연적 연고와 아산 신창의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성리학적 기풍이 아산, 예산, 청양, 해미 등의 내포지역과 경기도 일부까지 새로운 도학적 유학풍토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학수 교수는 잠야문파의 형성과 전개 주제의 발표에서 " 잠야문파의 형성시점은 박지계의 강학이 본격화 되었던 17세기 초반이었으며, 1613년 계축옥사의 정치적 소용돌이속에서 이루어진 신창지역 정착은 아산, 덕산, 청양, 공주 등의 학인들의 입문이 촉진되어 잠야문파의 외연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면서, "여기에 김극형, 원두표, 홍진례, 변호길, 변인길 등 서울 및 근기권 인사들의 학문활동아 더해지면서 잠야문파는 서울-호서권이 연접하는 학문적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교수는 "박지계의 학문속에는 화담 서경덕의 학문적 성향도 담겨 있다"면서, "잠야의 문파는 율곡학문과 화담학문을 조화롭게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김기승 순천향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박학래 군산대 교수, 김창경 충남대 교수, 성봉현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근호 충남대 교수 등이 지정토론자로 참여해 각 발표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학자들은 인산서원 배향인물의 철학적 정체성과 인산서원의 복원 가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특히, 군산대학교 박학래 교수는 종합토론에서 "박지계의 학문은 율곡학문과 퇴계학문과 다른 학문적 성격을 지녔고, 잠야의 학문이 아산에 국한되지 않고 경기도를 포함하는 다른 지역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였는지도 살펴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근호 충남대학교 교수는 "잠야 박지계의 학문을 문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점에서 학술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면서 "문파라면 그 학문적 특징과 차별성은 무엇인지와 예학에 대한 강조는 당대의 시대적인 추세가 였다는 점에서 잠야문파의 학문적인 정체성을 명시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학파로서인정 받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또한 인산서원에 모셔진 잠야선생이 주향이 아니라 배향으로 모셔졌다는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만큼 논의를 더 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학술대회 발표 및 토론 자료는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가 운영하는 ‘아산학연구소 아카이브 플랫폼’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는 앞으로도 지역 인문자원의 계승과 아산 유학 연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학술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