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복의 신 충청어람
이재복의 신 충청어람
  • 편집국
  • 승인 2006.04.1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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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참마속(泣斬馬謖)은 삼국지 촉지 제갈량전(三國志, 蜀志, 諸葛亮專)에 나오는 고사이다.  
읍(泣)은 물 수(水)에 설 립(立)을 짝지은 글자로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斬)은 ‘베다’, 속(謖)은 ‘일어나다’는 뜻으로 쓰인다. 

촉나라 때의 일이다.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치기 위해 삼군을 이끌고 한중(漢中)으로 향했다. 그는 여러 전투에서 위나라 군사들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위기에 몰린 위나라는 사마중달로 하여금 20만 대군을 이끌고 제갈공명의 침공을 막도록 했다. 사마중달은 기산의 들판에서 촉나라 군대의 침입에 대비하여 부채꼴 모양의 진을 치고 있었다. 제갈공명은 이미 그를 물리칠 책략을 세워놓고 있었으나 촉 군의 군량 수송로인 가정(街亭)이 불안했다. 그곳이 위나라 군에게 막히면 촉나라 군사들은 꼼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제갈공명은 다른 장수를 시켜 먼저 사마중달의 군대를 치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전투에서 중책을 맡길 만한 장수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와 절친한 사이였던 마량의 아우인 마속(馬謖)이 그 임무를 맡겠다고 자청했다. 그는 제갈공명이 아끼던 인물이었으나, 너무 어려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속은 전투에서 패하면 자신과 가족들의 목을 내놓겠다고 하였다. 결국 마속은 임무를 맡았고, 제갈공명은 그에게 산기슭 길을 사수하여 위 군을 접근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마속은 기산의 지형이 적을 끌어들여 역습하기에 알맞다고 생각을 하고 산 위에 진을 쳤다. 결국 마속은 위 군에게 포위를 당하여 패하고, 제갈량 역시 수송로가 막혀 전군을 철수시켰다.
결국 마속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참형을 언도 받았다. 많은 장군들이 그를 참형하는 것은 유능한 인재를 잃는 것이라며 용서해 줄 것을 청했다. 제갈공명은 많은 갈등을 겪었다. 마속은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의 아우이자 평소에 아끼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공과 사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인물이었다. 결국 마속은 많은 병사들 앞에서 처형을 당했다. 얼마 후 집무실로 돌아온 제갈공명은 엎드려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읍참마속은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법을 공정하게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린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읍참마속은 군의 법과 질서를 위해 아끼던 유능한 장수를 참형한 제갈량의 공명정대함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참으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는 너무 관대하다. 국가에 큰 해를 끼치고도 버젓이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형사건이 터져도 읍참마속 하는 예를 보기 힘들다. 그러니 각종 권력형 비리들이 되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웬만한 대형사건이 터져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 설령 대형사건의 책임을 묻는다 해도 하위직 몇 명이 처벌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결과 권력층을 향한 국민들의 불신감은 날로 더해간다. 지금 국민들 사이에는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라는 냉소적인 말들이 떠돌고 있다. 그러니 법질서가 제대로 설리 만무하다. 반드시 신상필벌(信賞必罰)의 법도를 세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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